김성호 정보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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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효율적이다.

세상은 가끔 우리의 직관을 뛰어넘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효율성의 격차를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바늘과 기계의 격차

나는 중고장터에서 5만원에 브라더 미싱기를 구매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실과 바늘로 만들던 것에 비해서 시간을 단축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손으로는 시도조차 못해볼 복잡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미싱기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인간의 수작업은 기계의 효율성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다.

더 직관적인 예도 있다. 당신이 집에서 펜치로 철사를 구부려 클립을 만들어 판다고 생각해보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영상을 유투브에서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비즈니스가 얼마나 바보같은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500ml 생수병 두 개에 담긴 기적

이 효율성의 격차가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에너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흔히 보는 500ml 생수병 두 개를 떠올려보자. 합쳐서 1리터다. 이 부피만큼의 휘발유가 가진 에너지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당신이 헬스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드는 벤치프레스 무게는 고작해야 100kg 남짓일 것이다. 그런데 휘발유 1리터는 무려 2,000kg(2톤)에 달하는 쇳덩어리(자동차)를 15km나 이동시킨다.

성인 남성이 2톤짜리 물체를 밀어서 15km를 이동시키려면 얼마나 걸릴까? 며칠, 아니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은 그 엄청난 일을 고작 휘발유 1리터, 커피 한 잔 값의 에너지로 순식간에 해치운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열역학 법치과 공학이 만들어낸, 극한으로 압축된 효율성의 결정체다. 우리는 고작 액체 1리터가 수십 명의 장정이 며칠간 해야 할 물리적 노동을 대신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치의 정의: 세상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그렇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명확하다. 당신이 세상의 평균적인 효율성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커피 한 잔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집에서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린다고 가정하자. 겉보기엔 카페보다 저렴해 보인다. 하지만 로스팅 기계의 가동률, 원두의 대량 구매 단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에 당신이 당신의 전문 분야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비용까지 계산해 본다면? 당신은 스타벅스의 시스템보다 저렴하게 커피를 내리기 힘들다.

이것이 당신이 커피를 직접 재배하지 않고 카페에서 사 마시는 이유다. 당신은 커피를 만드는 것보다, 당신의 본업(코딩이든, 글쓰기든, 혹은 다른 업무든)에서 훨씬 더 압도적인 효율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거기서 번 돈으로 남이 효율적으로 만들어놓은 커피를 산다. 이것이 분업의 본질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당신이 '카페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 당신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다. 당신은 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그 거대한 효율성 시스템과 경쟁해야 한다.

기존의 카페들이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비용보다 더 적은 투입으로, 더 나은 결과물(맛, 공간, 가격)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효율성의 기준점(Threshold)을 넘어서지 못하면, 당신의 가게는 낭만적인 취미 생활로 전락하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맺음말: 효율성을 직시하라

사람들은 종종 "예전 방식이 좋았어",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켜"라고 말하며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효율성을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수치로 확인한 세상은 소름 끼치도록 효율적이다. 휘발유 1리터가 2톤의 쇳덩이를 15km나 옮기는 이 효율의 세계에서, 단순히 "열심히 했다"는 감상만으로는 설 자리가 없다.

이 거대한 효율성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취미로서의 비효율은 즐기자. 하지만 당신이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고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세상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보다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프로의 세계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다도(茶道)를 즐기며 찻잎을 우려내는 느림의 미학을 비웃으려는 것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마음을 수양하는 행위의 고귀함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때로 '결과'보다 '행위 그 자체'에서 위로를 얻는다. 취미의 영역에서 비효율은 낭만이자 휴식이 된다.